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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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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예수의 매장은 예수의 생애와 관련된 중요한 사건으로, 성경과 기독교 신학, 예술에서 다루어진다. 신약성경 복음서들은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무덤에 안치하는 장면을 묘사하며,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사건의 역사적 사실 여부에 대한 논쟁이 존재한다. 신학적으로는 예수의 죽음을 확인하고 부활의 전조로 해석되며, 예술 작품의 주요 소재로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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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매장
사건 개요
사건명예수의 매장
다른 이름Entombment of Christ (그리스도의 매장)
Deposition of Christ (그리스도의 내려놓음)
관련 성경 구절마태복음 27:57-61
마가복음 15:42-47
누가복음 23:50-56
요한복음 19:38-42
관련 인물예수
아리마태아 요셉
니고데모
막달라 마리아
다른 여인들
묘사
주요 내용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은 후, 아리마태아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인수하여 무덤에 안치하는 과정. 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을 제공하고,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이 무덤을 지켜봄.
도상학적 의미예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전조를 상징함. 구원과 희생의 의미를 내포.
예술적 표현
주요 표현 매체회화
조각
필사본 삽화
대표적인 작품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카라바조의 《그리스도의 매장》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의 《십자가에서 내림》
특징예수의 시신을 운반하거나 무덤에 안치하는 장면을 묘사하며, 슬픔과 경건함, 숭고함 등의 감정을 표현함.

2. 성경 기록

예수의 매장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사도 바울의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편지(54년경)에 나타난다. 바울은 여기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자신이 받은 내용을 언급하며,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라고 썼다.[4]

정경 복음서(66년~95년 사이 기록)는 예수의 체포, 재판, 예수의 십자가형, 매장, 예수의 부활에 대한 확장된 이야기로 결론을 내린다.[5] 이들은 예수의 십자가형이 있던 날 저녁,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신을 요구했고, 빌라도가 요청을 수락한 후 시신을 세마포로 싸서 무덤에 안치했다고 설명한다. 사도행전 13장 28-29절은 예수가 공의회에 의해 무덤에 안치되었다고 전한다.

현대 학문은 복음서 기록을 대조하여 마가 복음의 묘사가 더 개연성이 있다고 본다.[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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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복음서별 묘사

예수의 매장에 대한 가장 초기의 언급은 사도 바울의 서신에 나타난다. 서기 54년경 고린도전서에서 그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자신이 전해 들은 내용을 언급하며 "그가 묻히셨고,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라고 기록했다.[4]

정경 복음서들은 66년에서 95년 사이에 쓰여졌으며, 예수의 체포, 예수의 산헤드린 재판, 예수의 십자가형, 매장, 그리고 예수의 부활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5] 이 복음서들은 예수의 십자가형 저녁,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시신을 요청하고, 빌라도가 요청을 수락한 후 시신을 고운 베로 감싸 예수의 무덤에 안치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사도행전 13장 28-29절에 따르면, 예수는 "온 의회"에 의해 무덤에 안치되었다.

현대 학문은 복음서 기록들을 대조하여 마가 복음의 묘사가 더 개연성이 있다고 본다.[7][6] 마가 복음, 마태오 복음서, 루가 복음서, 요한 복음서는 각각 아리마대 요셉의 역할과 매장 방식에 대해 조금씩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아래 비교는 ''신 국제 버전''을 기준으로 한다.

바울마가마태오루가요한사도행전
요셉과 빌라도마태오 27:57–58루카 23:50–52요한 19:38사도행전 13:29
매장고린토전서 15:4마르코 15:46–47마태오 27:59–61루카 23:53–56요한 19:39–42사도행전 13:29
대제사장과 빌라도마태오 27:62–66
마리아(들)마르코 16:1–2마태오 28:1루카 24:1요한 20:1



2. 1. 1. 마가복음

마가 복음(가장 오래된 정경 복음서)은 서기 66년에서 72년 사이에 쓰였는데,[7] 아리마대 출신 요셉은 예수를 정죄한 산헤드린의 일원이었으며, 시체가 하룻밤 동안 노출될 수 없다는 유대 율법에 따라 시신이 매장되도록 하기를 원했다. 그는 시신을 새 수의에 싸서 바위에 깎아 만든 무덤에 안치했다. 그 세기 후반에 글을 쓴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이 이 율법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묘사했는데, 심지어 십자가에 매달린 범죄자들의 시신도 해가 지기 전에 내려서 매장했다.[8] 이 기록에서 요셉은 율법을 준수하기 위해 최소한의 행위만 하는데, 시신을 천으로 감쌌을 뿐 씻는 의식이나 기름을 바르는 것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것은 마가가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기 전에 어떤 여인이 예수에게 향유를 붓는 사건을 언급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9] 이로써 예수는 실제 죽음에 앞서 매장을 위한 준비를 갖추게 된다.[10]

2. 1. 2. 마태복음

마태오 복음서는 마르코 복음서를 자료로 하여 서기 80년에서 85년 사이에 쓰여졌다. 이 기록에서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은 산헤드린의 일원으로 언급되지 않고, 예수의 부유한 제자로 묘사된다.[11][12] 많은 해석가들은 이를 저자가 부유한 지지자들에게 은근히 호의를 보이는 것으로 해석하지만,[12] 다른 이들은 이것이 이사야 53:9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믿는다.

> "그들은 그의 무덤을 악인들과 함께 만들었고, 그의 묘소를 부자와 함께 만들었다. 그는 폭력을 저지르지 않았고, 그의 입에는 속임수도 없었다."

이 버전은 좀 더 존경받는 장례를 암시한다. 요셉은 시신을 깨끗한 수의로 감싸 자기 무덤에 안치하며, 사용된 단어는 ''ptoma''(시체)가 아닌 ''soma''(몸)이다.[13] 저자는 로마 당국이 "돌에 봉인을 하고 경비병을 배치하여 무덤을 안전하게 만들었다"고 덧붙인다.

2. 1. 3. 누가복음

90~95년경에 기록된 루카 복음서는 마르코 복음서를 바탕으로 쓰여졌다.[15] 마르코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아리마대 요셉은 산헤드린의 구성원으로 묘사되지만, 예수에 대한 산헤드린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묘사된다. 그는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15]

2. 1. 4. 요한복음

요한복음서는 복음서들 중 마지막으로, 서기 80년에서 90년 사이에 쓰였으며, 아리마대 요셉을 예수에게 존경스러운 장례를 치르는 제자로 묘사한다. 요한은 요셉이 장례 과정에서 니고데모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는데, 니고데모는 몰약알로에 혼합물을 가져와 유대 관습에 따라 이 향료들을 장례용 천에 넣었다.[16]

2. 2. 사도행전

사도행전 13장 28~29절에 따르면 예수는 공의회에 의해 무덤에 안치되었다.

3. 역사적 배경

학자들은 예수의 매장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사실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며, 예수가 제대로 된 매장을 받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논쟁의 쟁점은 다음과 같다.


  • 예수의 시신이 해가 지기 전에 십자가에서 내려졌는지, 아니면 십자가에 매달려 썩도록 방치되었는지
  • 예수의 시신을 누가 내렸는지 (\[\[아리마대 요셉]], 산헤드린, 일반 유대인 그룹)
  • 예수가 매장되었다면 어떤 종류의 무덤에 매장되었는지, 아니면 공동 묘지에 묻혔는지


해가 지기 전에 적절한 매장이 이루어졌다는 주장은 토라에 근거한 유대인의 관습에 따른 것이다. 이 관습은 처형된 사람의 시신은 공개 전시를 위해 시체가 매달린 나무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되며 해가 뜨기 전에 매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신명기 21:22-23에 근거하며, 에세네파의 성전 두루마리와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 4.5.2§317에도 증언되어 있다. 또한 서기 6세기의 로마법 법전인 디게스타에서도 언급되는데, 여기에는 서기 2세기의 내용으로 "처벌받은 사람들의 시신은 요청과 허가가 있을 때만 매장된다"고 명시되어 있다.[19][20] 십자가형으로 처형된 사람들의 매장은 여호하난과 같이 발굴된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서도 증명된다.[17][18]

마르틴 헹겔은 예수가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은 처형된 범죄자로서 굴욕적인 방식으로 매장되었다고 주장했으며,[17][21] 이 견해는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존 도미닉 크로산은 예수의 추종자들이 시신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고 주장했다.[19] 크로산에 따르면 아리마대 요셉은 "이름, 장소, 기능 면에서 완전히 마가적 창작물"이며,[19]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신명기 21:22-23을 근거로 율법을 준수하는 유대인 집단에 의해 예수가 매장되었다고 추론했으며, 이는 사도행전 13:29에 묘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신약학자 모리스 케이시는 "유대인 범죄자들은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매장을 받아야 했다"고 지적하며,[22] 요세푸스를 인용한다. 케이시는 예수가 실제로 산헤드린이 소유한 범죄자들의 무덤에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 매장되었다고 주장한다.[22] 따라서 그는 빈 무덤 이야기가 전설이라고 거부한다.[22]

신약 시대 역사가 바트 D. 어만 또한 예수의 시신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고 결론짓지만, 예수가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 매장되었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20] 어만은 사도행전 13장이 예수를 한 명의 멤버가 아닌 산헤드린 전체가 무덤에 넣었다고 언급하고 있음을 지적한다.[20]

많은 기독교 저자들은 복음서의 기록이 역사적으로 신뢰할 만하다고 보고 이러한 비판을 거부해 왔다. 존 A.T. 로빈슨은 "무덤에 예수의 매장은 예수에 관한 가장 오래되고 입증된 사실 중 하나"라고 말한다.[21] 데일 앨리슨은 아리마대 요셉이 로마 당국으로부터 예수의 매장을 위한 허가를 구하고 얻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19] 레이먼드 E. 브라운은 모세 율법에 따라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 새 무덤에 묻혔다고 주장한다.[23]

제임스 던은 예수께서 적절한 매장을 받으셨다는 전통이 굳건하며, 그 증언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18] N. T. 라이트는 그리스도의 매장이 가장 초기의 복음서 전통의 일부라고 주장한다.[22] 크레이그 A. 에반스는 예수의 매장이 유대인의 민감성과 역사적 현실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23]

종교학 교수 존 그레인저 쿡은 기독교의 수많은 초기 비평가들이 매장의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였지만 부활을 거부했다고 지적한다.[24]

3. 1. 유대교 전통

마가 복음(가장 오래된 정경 복음서)은 66년에서 72년 사이에 쓰였는데, 아리마대 출신 요셉은 예수를 정죄한 산헤드린의 일원이었다. 그는 시체가 하룻밤 동안 노출될 수 없다는 유대 율법에 따라 시신이 매장되도록 하기를 원했다.[7] 요셉은 시신을 새 수의에 싸서 바위에 깎아 만든 무덤에 안치했다. 같은 세기 후반에 글을 쓴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이 이 율법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으며, 심지어 십자가에 매달린 범죄자들의 시신도 해가 지기 전에 내려서 매장했다고 묘사했다.[8] 요셉은 율법을 준수하기 위해 최소한의 행위만 했는데, 시신을 천으로 감쌌을 뿐 씻는 의식이나 기름을 바르는 것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는 마가가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기 전에 어떤 여인이 예수에게 향유를 붓는 사건을 언급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9] 이로써 예수는 실제 죽음에 앞서 매장을 위한 준비를 갖추게 된다.[10]

4. 역사적 논쟁

예수의 매장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바울로의 편지에 나타난다. 그는 서기 54년경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라고 언급한다.[19]

마가복음을 비롯한 네 개의 정경 복음서는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신을 요구하여 무덤에 안치했다고 전한다. 사도행전 13장 28~29절에는 공의회가 예수를 무덤에 안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현대 학자들은 복음서 기록의 차이점에 주목하며, 마가복음의 묘사가 더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아리마대 요셉은 유대 율법에 따라 시신을 매장하고자 했던 산헤드린 의원이었다. 유대 율법은 시신을 밤새 노출시키는 것을 금지했다.[19]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이 이 법을 중요하게 여겨 십자가형을 당한 범죄자들의 시신도 해 지기 전에 매장했다고 설명한다.[19]

마태복음은 아리마대 요셉을 부유한 예수의 제자로 묘사하며, 누가복음은 요셉을 산헤드린 의원이지만 예수에 대한 결정에 동의하지 않은 인물로 그린다. 요한복음은 요셉을 제자로 묘사하며, 니고데모의 도움을 받아 예수의 장례를 치렀다고 전한다.

마르틴 헹겔, 존 도미닉 크로산, 모리스 케이시, 바트 D. 어만 등 일부 학자들은 복음서 기록과 달리 예수가 처형된 범죄자로서 제대로 된 매장을 받지 못했거나 굴욕적인 방식으로 매장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혹은 시신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내용은 "매장 방식 논쟁"과 그 하위 섹션인 "비판적 견해", "전통적 견해"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간략하게 요약했다.

4. 1. 매장 방식 논쟁

예수의 매장 방식에 대한 논쟁은 크게 두 가지 견해로 나뉜다. 하나는 복음서의 기록을 신뢰하여 예수가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 존경받는 방식으로 매장되었다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가 처형된 범죄자로서 굴욕적인 방식으로 매장되었거나, 시신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견해이다.

예수의 매장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바울의 편지에 나타난다. 그는 서기 54년경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라고 언급하고 있다.[19]

마가복음을 비롯한 네 개의 정경 복음서는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신을 요구하여 무덤에 안치했다고 전한다. 사도행전 13장 28~29절에는 공의회가 예수를 무덤에 안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현대 학자들은 복음서 기록의 차이점에 주목하며, 마가복음의 묘사가 더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아리마대 요셉은 유대 율법에 따라 시신을 매장하고자 했던 산헤드린 의원이었다. 유대 율법은 시신을 밤새 노출시키는 것을 금지했다.[19]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이 이 법을 중요하게 여겨 십자가형을 당한 범죄자들의 시신도 해 지기 전에 매장했다고 설명한다.[19]

반면, 마태복음은 아리마대 요셉을 부유한 예수의 제자로 묘사하며, 누가복음은 요셉을 산헤드린 의원이지만 예수에 대한 결정에 동의하지 않은 인물로 그린다. 요한복음은 요셉을 제자로 묘사하며, 니고데모의 도움을 받아 예수의 장례를 치렀다고 전한다.

마르틴 헹겔, 존 도미닉 크로산, 모리스 케이시, 바트 D. 어만 등 일부 학자들은 복음서의 기록과 달리 예수가 처형된 범죄자로서 제대로 된 매장을 받지 못했거나 굴욕적인 방식으로 매장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혹은 시신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논쟁의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다:

  • 예수의 시신이 해 지기 전에 십자가에서 내려졌는가, 아니면 십자가에 매달려 썩도록 방치되었는가?
  • 예수의 시신을 누가 내려 매장했는가? (아리마대 요셉, 산헤드린, 일반 유대인 그룹)
  • 예수가 매장되었다면 어떤 종류의 무덤에 묻혔는가? (개인 무덤, 공동묘지)


이러한 논쟁은 예수의 매장 방식에 대한 역사적, 신학적 해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4. 1. 1. 비판적 견해

예수의 매장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서기 54년경 바울의 편지에서 나타난다. 그는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라고 언급한다.[19]

66년에서 95년 사이에 기록된 네 개의 정경 복음서는 예수의 체포, 재판, 십자가형, 매장,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복음서들은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신을 요구하여 세마포로 싸서 무덤에 안치했다고 전한다. 사도행전 13장 28~29절에는 공의회가 예수를 무덤에 안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대 학자들은 복음서 기록의 차이점에 주목하며, 마가복음의 묘사가 더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 마가복음(66~72년경)에 따르면, 아리마대 요셉은 유대 율법에 따라 시신을 매장하고자 했던 산헤드린 의원이었다. 유대 율법은 시신을 밤새 노출시키는 것을 금지했다.[19]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이 이 법을 중요하게 여겨 십자가형을 당한 범죄자들의 시신도 해 지기 전에 매장했다고 설명한다.[19] 요셉은 시신을 수의에 싸서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에 안치했지만, 몸을 씻거나 기름을 바르는 행위는 언급되지 않아 율법 준수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만 취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마가가 십자가 처형 이전에 한 여인이 예수에게 향유를 부은 사건을 언급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즉, 예수는 죽기 전에 이미 매장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80~85년경)은 마가복음을 바탕으로 아리마대 요셉을 산헤드린 의원이 아닌 부유한 예수의 제자로 묘사한다. 많은 학자들은 이를 부유한 지지자들을 향한 저자의 의도적인 서술로 해석하지만, 다른 이들은 이사야 53장 9절 예언의 성취로 보기도 한다.[19] 마태복음은 요셉이 시신을 깨끗한 수의로 싸서 자신의 무덤에 안치했다고 기록하며, '시체'(프토마) 대신 '몸'(소마)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또한 로마 당국이 "돌에 도장을 찍고 경비병을 배치하여 무덤을 안전하게 만들었다"고 덧붙인다.[19]

누가복음(90~95년경) 역시 마가복음을 바탕으로 요셉을 산헤드린 의원으로 묘사하지만, 예수에 대한 산헤드린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던 인물로 그린다. 그는 예수의 제자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렸다"고 한다.[19]

요한복음(80~90년경)은 요셉을 제자로 묘사하며, 니고데모의 도움을 받아 예수의 장례를 치렀다고 전한다. 니고데모는 유대 관습에 따라 몰약과 침향을 섞어 수의에 넣었다.[19]

페드로 롤단의 ''그리스도의 매장''


학자들은 예수의 매장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사실인지에 대해 의견이 다르며, 예수가 제대로 매장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19]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다.

  • 예수의 시신이 해 지기 전에 십자가에서 내려졌는가, 아니면 십자가에 매달려 썩도록 방치되었는가?
  • 예수의 시신을 누가 내려 매장했는가? (아리마대 요셉, 산헤드린, 일반 유대인 그룹)
  • 예수가 매장되었다면 어떤 종류의 무덤에 묻혔는가? (개인 무덤, 공동묘지)


해가 지기 전 적절한 매장이 이루어졌다는 주장은 토라에 근거한 유대인의 관습에 따른다. 신명기 21장 22-23절은 처형된 사람의 시신을 밤새 나무에 매달아 두지 말고 해 지기 전에 매장해야 한다고 명시한다.[19] 이는 에세네파의 성전 두루마리와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 4.5.2§317에도 나타나 있다.[19] 또한 서기 6세기 로마법 법전인 디게스타는 "처벌받은 사람들의 시신은 요청과 허가가 있을 때만 매장된다"고 명시한다.[19] 십자가형을 당한 사람들의 매장은 여호하난과 같이 발굴된 고고학적 발견으로도 증명된다.[19]

루벤스의 ''그리스도의 매장''


마르틴 헹겔은 예수가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은 범죄자로서 굴욕적인 방식으로 매장되었다고 주장하며,[19] 이 견해는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진다.[19] 존 도미닉 크로산은 예수의 추종자들이 시신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고 주장한다.[19] 크로산에 따르면 아리마대 요셉은 "완전히 마가적인 창작물"이며,[19]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신명기 21장 22-23절에 따라 유대인 집단에 의해 예수가 매장되었다고 추론했고, 이는 사도행전 13장 29절에 묘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19] 이 이야기는 마가에 의해 각색되어 유대인 집단이 특정 인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19] 실제로 일어난 일은 시신을 형틀에 남겨두는 로마 관행에서 추론할 수 있는데, 이는 "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로 유명하다.[19]

영국의 신약학자 모리스 케이시는 "유대인 범죄자들은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매장을 받아야 했다"고 지적하며,[19] 요세푸스를 인용한다. 케이시는 예수가 실제로 산헤드린이 소유한 범죄자들의 무덤에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 매장되었다고 주장하며,[19] 빈 무덤 이야기는 전설이라고 일축한다.[19]

신약 시대 역사가 바트 D. 어만은 예수의 시신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예수가 제대로 된 매장을 받았는지, 특히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 매장되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19] 어만은 사도행전 13장이 예수를 한 명의 멤버가 아닌 산헤드린 전체가 무덤에 넣었다고 언급하고 있음을 지적한다.[19] 어만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윤색되어 더 자세해졌을 수 있으며, "원래 이름 없는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를 매장했다는 모호한 진술은 한 지도자가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로 바뀌었다."[19] 어만은 적절한 매장에 대해 세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때때로 기독교 옹호자들은 안식일 다음 날이 안식일이고 사람이 안식일 동안 십자가에 남아 있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 유대인의 율법에 어긋나기 때문에 금요일 해가 지기 전에 십자가에서 예수를 내려야 했다고 주장한다. 불행하게도, 역사적 기록은 정반대를 시사한다."[19] 헹겔과 크로산을 언급하며, 어만은 십자가형은 "사람을 최대한 고문하고 굴욕을 주기 위한 것"이었으며, 시신은 일반적으로 동물에게 먹히도록 형틀에 남겨졌다고 주장한다.[19] 어만은 또한 범죄자들은 보통 공동 묘지에 묻혔으며,[19] 빌라도는 유대인의 민감성에 관심이 없었으므로 그가 예수의 매장을 허용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한다.[19]

많은 기독교 저자들은 복음서의 기록이 역사적으로 신뢰할 만하다고 보고 이러한 비판을 거부해 왔다. 존 A.T. 로빈슨은 "무덤에 예수의 매장은 예수에 관한 가장 오래되고 입증된 사실 중 하나"라고 말한다.[21] 데일 앨리슨은 크로산과 어만의 주장을 검토하면서 이 주장이 강력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리마대라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산헤드린의 한 사람이자 로마 당국으로부터 예수의 서둘러 매장을 위한 준비를 할 허가를 구하고 얻었을 가능성이 높다."[19] 레이먼드 E. 브라운은 헹겔과 크로산의 출판 전에 1973년에 글을 쓰면서 많은 저자들이 공동 묘지에 매장하는 것에 대해 주장했음을 언급하지만, 브라운은 예수의 시신이 모세 율법에 따라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 새 무덤에 묻혔다고 주장한다.[19]

제임스 던은 "예수께서 적절한 매장을 받으셨다는 전통이 굳건하며(마가복음 15.42-47 pars.), 그 증언을 존중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말하며 비판을 일축한다.[19] 던은 매장 전통이 "우리가 가진 가장 오래된 전통 중 하나"이며,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5장 4절을 언급하며, 매장은 신명기 21장 22-23절에 규정되고 요세푸스 ''전쟁''에서 확인된 유대 관습과 일치하며, 십자가형을 받은 사람들의 매장 사례가 알려져 있으며, 이는 여호하난 매장에 의해 증명되었고, 아리마대 요셉은 "매우 그럴듯한 역사적 인물"이며, "십자가에 여인들이 있었고 예수의 매장에 참여한 것은 창의적인 스토리텔링보다 초기 구전 기억에 더 그럴듯하게 기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19] N. T. 라이트는 그리스도의 매장이 가장 초기의 복음서 전통의 일부라고 주장한다.[22] 크레이그 A. 에반스는 신명기 21장 22-23절과 요세푸스를 언급하며 예수의 매장이 유대인의 민감성과 역사적 현실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19]

종교학 교수 존 그레인저 쿡에 따르면, 대량 매장을 언급하는 역사적 텍스트가 있지만, 그 시신이 동물에 의해 파헤쳐졌다는 징후는 없다. 어떤 로마 텍스트에도 열린 구덩이나 얕은 무덤에 대한 언급은 없다. 복음서 외에도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의 시신이 가족이나 친구에 의해 매장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많은 역사적 텍스트가 있다. 쿡은 "그 텍스트는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를 매장했다는 이야기가 복음서의 그리스-로마 독자들에게 완전히 이해될 수 있고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적었다. 쿡은 켈수스, 포르피리오스, 히에로클레스, 율리아누스, 마카리우스의 익명의 이교도 철학자와 같은 기독교의 수많은 초기 비평가들이 매장의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였지만 부활을 거부했다고 지적한다.[24]

4. 1. 2. 전통적 견해



예수의 매장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바울의 편지에 나타난다. 그는 서기 54년경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자신이 받은 기록을 언급하며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라고 쓰고있다.[20]

마가복음 (66년에서 72년경)을 바탕으로 쓰여진 4개의 정경 복음서(66년에서 95년 사이 기록)는 예수의 체포, 재판, 십자가에 못 박히심, 매장, 그리고 부활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복음서에는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신을 요구하고, 빌라도가 이를 허락하여 시신을 세마포로 싸서 무덤에 안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21] 사도행전 13장 28~29절은 예수가 산헤드린 공회에 의해 무덤에 안치되었다고 기록한다.

현대 학자들은 복음서 기록들을 비교했을 때, 마가복음의 묘사가 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마가복음에서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를 정죄한 산헤드린의 일원이지만, 유대 율법에 따라 시신을 매장하기를 원한다. 유대 율법에는 시신을 밤새 노출시킬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는 시신을 새 수의에 넣어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에 안치했다. 20세기 말, 유대인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이 이 율법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십자가에 못 박힌 범죄자들의 시체도 해가 지기 전에 끌어내어 매장했다고 설명했다.[22] 마가복음의 기록에서 요셉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일만 하며, 시신을 씻거나 기름을 바르는 것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는 마가가 십자가 처형 이전에 한 여자가 예수에게 향유를 부은 사건을 언급한 이유를 설명해주며, 예수는 죽기 전에도 매장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은 80년에서 85년경에 마가복음을 바탕으로 기록되었다. 여기에서 아리마대 요셉은 산헤드린의 일원이 아니라 부유한 예수의 제자로 묘사된다. 많은 해석자들은 이것을 저자가 부유한 지지자들을 향한 교묘한 방향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았지만, 다른 이들은 이것이 이사야 53장 9절 예언의 성취라고 믿는다.

:"저희가 그 묘실을 악인과 함께 하고 부자와 함께 하였으니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더라"

이 버전은 더 명예로운 매장을 보여준다. 요셉은 시신을 깨끗한 수의로 싸서 자신의 무덤에 안치하는데, 여기서 사용된 단어는 프토마(시체)가 아니라 소마(몸)이다. 또한 로마 당국이 "돌에 도장을 찍고 경비병을 배치하여 무덤을 안전하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90~95년경에 기록된 누가복음 역시 마가복음을 출처로 사용한다. 마가복음과 같이 요셉은 산헤드린의 일원으로 묘사되지만, 산헤드린의 예수에 대한 결정에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 그는 예수의 제자라기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렸다"고 한다.

80~90년경에 기록된 마지막 복음서인 요한복음은 요셉을 제자로 묘사하며, 예수를 존귀하게 장사 지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요한은 요셉이 매장 과정에서 니고데모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다. 니고데모는 유대 관습에 따라 몰약침향의 혼합물을 가져와 수의에 이 향료를 포함시켰다.

학자들은 예수의 매장 이야기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사실인지에 대해 의견이 다르며, 예수가 제대로 된 매장을 받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23] 논쟁의 핵심은 예수의 시신이 해가 지기 전에 십자가에서 내려졌는지, 아니면 십자가에 매달려 썩도록 방치되었는지, 그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져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 혹은 산헤드린 또는 일반 유대인 그룹에 의해 매장되었는지, 그리고 그가 매장되었다면 어떤 종류의 무덤에 매장되었는지, 아니면 공동 묘지에 묻혔는지에 대한 것이다.

해가 지기 전에 적절한 매장이 이루어졌다는 주장은 토라에 근거한 유대인의 관습으로, 처형된 사람의 시신은 공개 전시를 위해 시체가 매달린 나무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되며 해가 뜨기 전에 매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에세네파의 성전 두루마리와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 4.5.2§317에도 증언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해가 지기 전에 십자가에 처형된 유대 반란군의 매장에 대한 묘사가 있다.[24] 또한 서기 6세기의 로마법 법전인 디게스타에서도 언급되는데, 여기에는 서기 2세기의 내용으로 "처벌받은 사람들의 시신은 요청과 허가가 있을 때만 매장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십자가형으로 처형된 사람들의 매장은 여호하난과 같이 발굴된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서도 증명되는데, 이는 제거할 수 없는 못이 발 뒤꿈치에 박힌 시신이다.

마르틴 헹겔은 예수가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은 처형된 범죄자로서 굴욕적인 방식으로 매장되었다고 주장했으며, 이 견해는 "현재 널리 받아들여지고 학문 문헌에 깊이 자리 잡았다." 존 도미닉 크로산은 예수의 추종자들이 시신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크로산에 따르면 아리마대 요셉은 "이름, 장소, 기능 면에서 완전히 마가적 창작물"이며,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신명기 21:22-23에서 율법을 준수하는 유대인 집단에 의해 예수가 매장되었다는 것을 추론했으며, 이는 사도행전 13:29에 묘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 이야기는 마가에 의해 각색되어 유대인 집단이 특정 인물로 바뀌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관습적인 로마 관행에서 추론할 수 있는데, 이는 시신을 형틀에 남겨두어 존경할 만한 또는 가족 매장을 거부하는 것이었으며, 유명하게도 "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영국의 신약학자 모리스 케이시 또한 "유대인 범죄자들은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매장을 받아야 했다"고 지적하며, 요세푸스를 인용한다. 케이시는 예수가 실제로 산헤드린이 소유한 범죄자들의 무덤에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 매장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빈 무덤 이야기가 전설이라고 거부한다.

신약 시대 역사가 바트 D. 어만 또한 예수의 시신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고 결론짓지만, 예수가 제대로 된 매장을 받았다는 데 의문을 제기하며, 예수가 특히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 매장되었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어만은 사도행전 13장이 예수를 한 명의 멤버가 아닌 산헤드린 전체가 무덤에 넣었다고 언급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어만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윤색되어 더 자세해졌을 수 있으며, "원래 이름 없는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를 매장했다는 모호한 진술은 한 지도자가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어만은 적절한 매장에 대해 세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때때로 기독교 옹호자들은 안식일 다음 날이 안식일이고 사람이 안식일 동안 십자가에 남아 있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 유대인의 율법, 적어도 유대인의 민감성에 어긋나기 때문에 금요일 해가 지기 전에 십자가에서 예수를 내려야 했다고 주장한다. 불행하게도, 역사적 기록은 정반대를 시사한다." 헹겔과 크로산을 언급하며, 어만은 십자가형은 "사람을 최대한 고문하고 굴욕을 주기 위한 것"이었으며, 시신은 일반적으로 동물에게 먹히도록 형틀에 남겨졌다고 주장한다. 어만은 또한 범죄자들은 보통 공동 묘지에 묻혔으며, 빌라도는 유대인의 민감성에 관심이 없었으므로 그가 예수의 매장을 허용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한다.

많은 기독교 저자들은 복음서의 기록이 역사적으로 신뢰할 만하다고 보고 이러한 비판을 거부해 왔다. 존 A.T. 로빈슨은 "무덤에 예수의 매장은 예수에 관한 가장 오래되고 입증된 사실 중 하나"라고 말한다. 데일 앨리슨은 크로산과 어만의 주장을 검토하면서 이 주장이 강력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리마대라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산헤드린의 한 사람이자 로마 당국으로부터 예수의 서둘러 매장을 위한 준비를 할 허가를 구하고 얻었을 가능성이 높다." 레이먼드 E. 브라운은 헹겔과 크로산의 출판 전에 1973년에 글을 쓰면서 많은 저자들이 공동 묘지에 매장하는 것에 대해 주장했음을 언급하지만, 브라운은 예수의 시신이 모세 율법에 따라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 새 무덤에 묻혔다고 주장하며, 이 율법은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밤에 그곳에 남아 있을 수 없으며 해가 지기 전에 묻혀야 한다고 명시했다.

제임스 던은 "예수께서 적절한 매장을 받으셨다는 전통이 굳건하며(마가복음 15.42-47 pars.), 그 증언을 존중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말하며 비판을 일축한다. 던은 매장 전통이 "우리가 가진 가장 오래된 전통 중 하나"이며, 고린도전서 15.4를 언급하며, 매장은 신명기 21.22-23에 규정되고 요세푸스 ''전쟁''에서 확인된 유대 관습과 일치하며, 십자가형을 받은 사람들의 매장 사례가 알려져 있으며, 이는 여호하난 매장에 의해 증명되었고, 아리마대 요셉은 "매우 그럴듯한 역사적 인물"이며, "십자가에 여인들이 있었고 예수의 매장에 참여한 것은 창의적인 스토리텔링보다 초기 구전 기억에 더 그럴듯하게 기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N. T. 라이트는 그리스도의 매장이 가장 초기의 복음서 전통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크레이그 A. 에반스는 신명기 21:22-23과 요세푸스를 언급하며 예수의 매장이 유대인의 민감성과 역사적 현실과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에반스는 고고학자 조디 매그너스를 언급하며, 헹겔과 크로산의 견해에 의문을 제기하며 예수의 십자가에서 시신을 제거하고 매장하는 복음서의 기록이 고고학적 증거와 죽은 자를 즉시 매장(또는 묘에 안치)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유대 율법과 잘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매그너스는 다시 고고학자 바이런 맥케인의 ''Roll Back the stone''(2003)을 자주 언급한다. 맥케인 역시 죽은 자를 즉시 처분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예수는 범죄자의 무덤에 굴욕스럽게 묻혔다"고 결론지었다. 에반스는 또한 "정치적으로도 유월절 전날, 이스라엘의 외국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는 휴일에 빌라도가 예수에게 적절한 매장을 거부함으로써 유대인들을 자극하고 싶어 했을 것 같지는 않다"고 지적한다.

종교학 교수 존 그레인저 쿡에 따르면, 대량 매장을 언급하는 역사적 텍스트가 있지만, 그 시신이 동물에 의해 파헤쳐졌다는 징후는 없다. 어떤 로마 텍스트에도 열린 구덩이나 얕은 무덤에 대한 언급은 없다. 복음서 외에도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의 시신이 가족이나 친구에 의해 매장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많은 역사적 텍스트가 있다. 쿡은 "그 텍스트는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를 매장했다는 이야기가 복음서의 그리스-로마 독자들에게 완전히 이해될 수 있고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적었다. 쿡은 켈수스, 포르피리오스, 히에로클레스, 율리아누스, 마카리우스의 익명의 이교도 철학자와 같은 기독교의 수많은 초기 비평가들이 매장의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였지만 부활을 거부했다고 지적한다.

5. 신학적 의미

사도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라는 기록을 언급하며, 이는 예수의 매장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다.[25] 66년에서 95년 사이에 기록된 네 개의 정경 복음서는 예수의 체포, 재판, 십자가에 못 박히심, 매장, 부활에 대한 이야기로 결론을 내린다. 사도행전 13장 28~29절에 따르면 그는 공의회에 의해 무덤에 안치되었다. 현대 학문은 복음서 기록의 대조를 강조하고 마가의 묘사가 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절과 4절에서 "내가 받은 것을 너희에게 먼저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언급한다.[25]

사도신경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셨다"라고 예수의 매장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26]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왜 그가 매장되었는가?"라는 질문에 "그의 매장은 그가 정말 죽었다는 것을 증언했다"라는 답을 제시한다.[26]

스테인드글라스로 제작된 13세기 버전의 그리스도 매장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누워 인류의 구원을 완성한 후 하나님의 위대한 안식일을 드러내고, 온 우주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성 토요일의 신비"라고 말하며,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머무르신 것은 부활절 이전의 그의 수난 상태와 오늘날 그의 영광스럽고 부활하신 상태 사이의 실질적인 연결 고리를 형성한다"고 말한다.[27]

5. 1. 죽음의 확인

예수의 매장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사도 바울의 편지에 있다. 서기 54년경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받은 기록("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을 언급한다.[25]

사도신경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셨다"라고 예수의 매장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26]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왜 그가 매장되었는가?"라는 질문에 "그의 매장은 그가 정말 죽었다는 것을 증언했다"라는 답을 제시한다.[26]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누워 인류의 구원을 완성한 후 하나님의 위대한 안식일을 드러내고, 온 우주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성 토요일의 신비"라고 말한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머무르신 것은 부활절 이전의 그의 수난 상태와 오늘날 그의 영광스럽고 부활하신 상태 사이의 실질적인 연결 고리를 형성한다"고 설명한다.[27]

5. 2. 부활의 전조

사도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서기 54년경)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라고 언급한다.[25] 이는 예수의 매장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다.

사도신경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셨다"라고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왜 그가 매장되었는가?"라는 질문에 "그의 매장은 그가 정말 죽었다는 것을 증언했다"라고 답한다.[26]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성 토요일의 신비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누워 인류의 구원을 완성한 후 하나님의 위대한 안식일을 드러내고, 온 우주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머무르신 것은 부활절 이전의 그의 수난 상태와 오늘날 그의 영광스럽고 부활하신 상태 사이의 실질적인 연결 고리를 형성한다"고 말한다.[27]

6. 예술적 묘사

예수의 매장은 10세기 서유럽에서 예술의 주제로 발전했으며,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룬 주기에서 그리스도의 하강이나 그리스도의 애도 다음에 묘사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로는 이 주제들이 서로 결합되거나 혼합되기도 했다.[28]

6. 1. 회화

그리스도의 매장은 10세기에 서유럽에서 발전하여 예술에서 인기 있는 주제가 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생애 주기에서 나타나며, 그리스도의 하강 또는 그리스도의 애도 다음에 나타난다. 르네상스 이후로, 이것은 때때로 이들 중 하나와 결합되거나 혼합되었다.[28]

익명의 조각가가 조각한 무덤 속의 그리스도


기사가 있는 주목할 만한 개별 작품은 다음과 같다.

  • ''그리스도의 매장'' (부츠, c. 1450년대)
  • ''그리스도의 애도'' (로지에르 반 데르 바이덴, c. 1460–1463)
  • ''그리스도의 매장'' (미켈란젤로, c. 1500–01)
  • ''그리스도의 하강'' (라파엘, 1507)
  • ''그리스도의 매장'' (티치아노, 1525)
  • ''그리스도의 매장'' (티치아노, 1559)
  • ''그리스도의 매장'' (카라바조, 1603–04)
  • ''베일의 그리스도'' (산마르티노, 1753)

6. 2. 조각

1863년에 제작된 "성묘" (2024 성금요일 행렬)

참조

[1] 백과사전 The Entombment of Christ (1601-3) by Caravaggio http://www.visual-ar[...] Visual Arts Cork 2019-08-24
[2] Youtube Inside 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in Jerusalem https://www.youtube.[...] Kaitholil. com 2018-12-28
[3] 서적 Acts and Pauline Writings Mercer University Press 1997
[4] 성경
[5] 서적 Introducing the New Testament Baker Academic 2009
[6] 서적 Jesus of Nazareth: An Independent Historian's Account of His Life and Teaching Continuum 2010
[7] 서적 Mark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6
[8] 간행물 Burial of Jesus. II. Christianity. B. Modern Europe and America de Gruyter 2012
[9] 성경
[10] 문서 2012
[11] 서적 The Gospel of Matthew Liturgical Press 1991
[12] 서적 The Passion of Jesus in the Gospel of Matthew Liturgical Press 1990
[13] 서적 The Passion of Jesus in the Gospel of Matthew Liturgical Press 1990
[14] 서적 Luke For Everyon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5] 성경
[16] 성경
[17] 문서
[18] 문서
[19] 서적 The Gospel According to Peter: A Study https://books.google[...] Longmans, Green 2022-04-02
[20] 강연 From Jesus to Constantine: A History of Early Christianity The Teaching Company 2003
[21] 서적 The human face of God https://archive.org/[...] Westminster Press 1973
[22] 서적 The Challenge of Easter
[23] 문서 Jewish Burial Traditions and the resurrection of Jesus 2005
[24] 논문 Crucifixion and Burial 2011-04
[25] 서적 1 Corinthians Fortress 1969
[26] 웹사이트 Heidelberg Catechism http://www.wts.edu/r[...] 2016-10-17
[27] 웹사이트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https://www.vatican.[...] 2010-12-25
[28] 서적 Iconography of Christian Art, Vol. II Lund Humphries, London 1972
[29] 웹사이트 Cyberhymnal: "Were You There?" http://hymntime.com/[...]
[30] 웹사이트 Cyberhymnal: 'One Day' http://hymnti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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